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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이 느껴질 때

violet520 2020. 8. 8. 16:31

올해로 90이신 할머니는 나에게 늘 엄마와 할머니 그 중간의 존재였다.

 

어릴 때, 부모와 함께 살지 못한 나와 동생은 할머니 손에 길러졌다. 뇌졸증을 앓고 계셨던 할아버지의 힘듦에 나와 내 동생이 들어간 것이다. 너무 어린 나이였던지라 당시 내가 처했던 상황에 대한 이해도 없는 상태로 그렇게 할머니, 할아버지와 지내게 되었다. 이제 돌이켜보면 할머니가 얼마나 기가 찼을까 싶다. 지병을 앓고 있는 장남이 처와 헤어지고 맡긴 핏덩이 두 아이를 보면서 얼마나 한숨을 쉬셨을까?

 

하물며 옆에서 도움은 커녕 도움의 손길만 필요한 남편을 보며 얼마나 슬펐을까? 그 슬픔을 감히 이해할 수 없지만, 그래도 나와 내 동생은 할머니의 도움이 되어가며 살았다. 할머니는 삶의 힘듦으로 인해 누구에게도 살갑게 대하지 못하셨다. 우리 손자들에게도 항상 앞으로에 대한 걱정으로 극한의 절약을 가르치셨고, 힘든 일들에 대한 견딤을 몸소 알려주셨다.

당시 할아버지는 하루에도 대/소변 2~3번을 꼭 누가 옆에서 갈아줘야 했고, 할머니 혼자서 감당하던 그 일들을 나와 내 동생이 감당하게 되고 그 어린 시절에 참 고된 하루하루를 보냈었다. 너무너무 고되고 고된 끝나지 않을것 같은 나날들도 시간의 흐름앞에서는 과거가 되더라. 그렇게 시간이 흐르면서 나와 동생은 힘든게 힘든게 아닌 으레 사는게 그런건가 보다 하면서 지냈다.

 

할머니는 가끔 말씀하셨다. 나중에 커서 혼자서 잘 살 수 있게 되면 동생을 꼭 챙기라고, 할머니나 누구 도와 줄 것 없이 동생 잘챙기고 니 형제끼리 우애깊게 잘 살으라고 먹고 싶은거 먹고 하고 싶은것도 하면서 그렇게 살으라고... 경상도 특유의 무뚝뚝함으로 발끝에서 머리끝까지 무장하신 할머니의 가끔의 말들이 어색했지만 그 어색함 때문인지 더 깊게 남아있다.

 

10살 이후에 부모와 함께 한 적이 없기에 난 부모와의 관계에 대해서 잘 모른다. 알고 싶지도 않은 마음이 맞다. 지금도 아버지와 마주하면 모든게 어색하다. 결혼을 하고나니 장인/장모라는 다른 부모가 생겼다. 너무 어색했다. 부모라고 느껴지기 보다는 와이프의 부모니까 내가 할 수 있는 만큼은 잘 해드려야지 라는 생각이 더 컸다. 가끔 아내 몰래 할머니한테 물어봐도 그 특유의 경사도 무뚝뚝함으로 결국 그냥 너네들끼리 잘 살면 그게 효도하는거라고 항상 말씀해주시던 할머니...

 

그 할머니가 2주 전, 담관암 판정을 받으셨다.

너무 슬프다거나 괴롭다거나 하는 감정은 없는데 할머니 생각을 하지 않고 일을 하다가도 찔끔 눈물이 날 때가 있다. 이 눈물이 왜 흐르는지 살면서 울어본적이 몇 없는 나로서는 그냥 할머니와의 유대의 눈물인가 하고 있다. 그냥 이거저거 다 관두고 신경 끄고 할머니가 허리가 부러지셨을 때 처럼 그냥 옆에서 손잡고 있고 싶지만, 가족이 있고 아이들이 있다. 것보다 할머니가 그런 꼴을 보지 못하신다. 아버지와 함께 살아보진 않았지만 그래도 지금 할머니 곁을 아버지가 지키고 계신게 다행이다. 

 

40년이 넘은 당뇨와 90세가 되셔서 수술 치료도 항암 치료도 힘들고 호스피스치료 밖에 할 수가 없는 상황이 야속하다. 스탠드 시술로 막힌 부위만 뚫은 상태로 호스피스 치료로 길면 1년 이라고 한다. 의사들을 뭐라 할 건 없지만, 얼마나 성의없어 보이던지....

 

상황버섯, 후코이단등 항암능력이 좋다는 식품들을 많이 찾아보고 있다. 그런걸로 좀 더 오래 사실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언제가 될 지는 모르겠지만 남은 기간.. 예뻐하시는 증손주들도 더 많이 보여드리고 손자들도 더 자주 찾아뵙는 것. 또 어떤것들이 필요할까?

 

어머니 같은 사람의 죽음을 느낀다는것은 참 많은 것들을 깨닫게 한다.

그렇게 평생 고생에 고생을 거듭하시다가 병을 얻게 되신 할머니.... 

모질다 생각 될 만큼 현실을 가르쳐주셨던 할머니...

 

부디 좀 더 오래사시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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