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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비타민
작은 강 앞에 병력이 서 있다고, 나중에 글을 쓴 사람들이 적는다. 그 아침을 눈으로 적어 둔 사람은 없고, 우리가 읽는 이 강은 뒤에 다시 적힌 기록과 이야기다. 먼저 서는 것은 물가의 병력이고, 로마의 성벽은 아직 그 아침을 모른다.카이사르가 그 물줄기 앞에 선다. 루비콘은 큰 강이 아니라 속주와 이탈리아를 가르는 작은 경계 물줄기다. 땅을 파서 자리가 확정된 강이 아니라, 나중에 그 경계를 그렇게 부른 이름이다. 강을 넘는 순간 황제가 되고 공화정이 끝났다고 읽기 쉽지만, 그 유혹은 작은 물줄기만 보고 로마까지의 거리를 잊어버리는 일이다. 이름만 크다고 해서 그 아침이 나라의 끝으로 바뀌지는 않는다.경계를 병력과 넘기면 황제가 되나?속주에서 군대를 움직일 수 있던 자리와, 이탈리아 안에서 군대를 움..
아프리카 들판이 하루를 닫는다고, 나중에 글을 쓴 사람들이 적는다. 그 흙 위에 선 사람이 그날의 일기를 남긴 적은 없고, 우리가 읽는 이 아침은 뒤에 다시 적힌 전쟁 이야기라서, 먼저 닫히는 것은 들이고 성벽은 아직 그 불을 받지 않은 채로 서 있다. 발밑의 흙이 먼저 끝나고, 돌로 된 도시는 그 끝을 모르는 채로 남는다.나중에 글을 쓴 사람들이 그 들을 한 장의 그림으로 남긴다. 아프리카의 넓은 흙, 그 위에 선 한니발. 들이 닫혀도 멀리 있는 도시는 그 닫힘을 따라 타지 않고, 이긴 발과 진 발이 같은 흙을 디딘 하루가 된다. 닫히는 것은 들의 하루이고 열리는 것은 도시의 불이 아니라서, 이 한 장은 불탄 아침이 아니라 흙이 끝난 아침이다. 한니발은 그 흙의 한가운데에 있고 타지 않은 성벽은 그 장..
들판이 오므라들었다고, 후대가 적는다. 그날 그 흙 위에 선 사람이 일기를 남긴 적은 없고, 우리가 읽는 이 아침은 훨씬 뒤에 다시 적힌 전쟁사와 전승이다. 로마 성문이 먼저 열린 것이 아니라 들판이 먼저 닫힌 것이고, 로마까지는 아직 멀어서, 닫힌 것은 들이고 문이 열린 그림은 아직 없다.후대가 그 들을 한 장의 그림으로 남긴다. 한가운데가 밀리고 양옆이 안쪽으로 들어와, 넓던 들이 주머니처럼 오므라든다. 한니발은 여기서 이기되 이긴 발은 돌담이 아니라 흙 위에 있어, 들판의 이김과 로마의 문이 같은 상이 되지 않는다. 칸나이 들에서 고개를 들어도 로마 성벽은 보이지 않고, 이긴 날이 나라가 끝난 날처럼 읽히는 것은 들이 얼마나 크게 닫혔는지만 보고 로마까지 남은 길을 잊는 일이다.이긴 들이 성문을 열..
능선 아래 평야가 보인다고, 후대가 적는다. 그 능선에 선 사람이 그날의 일기를 남긴 적은 없고, 우리가 읽는 이 산길은 뒤에 다시 적힌 전쟁사와 전승이다.후대가 그 능선을 한 장의 그림으로 남긴다. 눈 위의 능선, 그 아래 평야. 한니발이 로마가 바다 쪽으로 닫혀 있다고 본 북쪽을, 산으로 연다. 해안을 두드리는 배가 아니라 눈이 쌓인 등성이가 먼저 열리고, 닫힌 문을 육로로 밀고 들어오는 자리가 되어, 그 한 장에서 한니발은 평야를 내려다보는 자리에 선다.그 산길은 그날의 일기인가?알프스를 넘었다는 통과는 고대 전쟁사로 다뤄지고, 폴리비오스 3권과 리비우스 21권이 그 전쟁을 현전으로 남긴다. 소년이 맹세했다는 본과 식초로 바위를 깼다는 본, 고개 이름을 확정하는 본은 전승이다. 기원전 218년의 일..
성 안의 길이 비었다고, 후대가 적는다. 그 거리를 그날의 눈으로 적은 글은 없고 기원전 5세기를 본 기록도 없어서, 우리가 읽는 이 빈 도시는 약 사백오십에서 오백 년 뒤에 다시 적힌 전승이다.후대가 그 아침을 한 장의 그림으로 남긴다. 평민이 도시를 비우고 언덕으로 물러난 뒤 성 안의 길은 사람이 빠진 채로 고요한데, 창을 든 행진이 골목을 메운 자리도 아니고 창을 성문으로 돌리는 그림도 아니라서, 비운 쪽은 성 안의 직을 빼앗으러 내려가지 않은 채 능선에 앉고 성 안은 그 비움을 먼저 느끼게 된다. 능선에 앉은 채로 새 직의 이름이 오기까지 성 안의 직은 그대로 남아, 내려가 그 자리를 빼앗는 길이 아니라 비운 쪽에서 이름이 오기를 기다리는 길이 되고, 이름이 오기 전 능선은 임시 진영이 아니라 빈..
두 사람이 앞으로 나선다고, 이야기는 그렇게 시작한다. 그런데 누가 그 자리에 섰는지를 그날의 눈으로 적은 글은 없고, 기원전 6세기를 본 기록도 없다. 우리가 읽는 이 장면은, 훨씬 뒤에 다시 적힌 전승이다.후대가 그 자리를 이렇게 그린다. 왕이 못 들어온 뒤 광장 한가운데는 아직 비어 있고, 왕관이 놓일 자리가 아니라 휘장을 받을 두 걸음이 필요한 자리다. 휘장은 왕의 권한을 보이던 겉옷인데, 그것이 옮겨지기 전 광장은 잠깐 고요하다. 발자국이 둘 들리면 그 고요가 깨지면서, 빈 자리로 한 사람이 아니라 두 사람이 걸어 나오고, 모인 사람들은 아직 이름이 아니라 그 두 걸음을 본다.한 걸음이면 왕과 같은 혼자였을 자리인데, 두 걸음이 그 자리를 가로지른다. 왕의 휘장이 그들 앞으로 옮겨지고 막대기 묶..
사람들이 한 집으로 불려 왔다고, 이야기는 그렇게 시작한다. 그런데 그 문 앞에 선 사람이 글로 남긴 적은 없다. 기원전 6세기를 본 기록이 없고, 우리가 읽는 이 고발은 훨씬 뒤에 다시 적힌 전승이다.후대가 그 아침을 이렇게 그린다. 루크레티아가 입을 열겠다고 한 자리로, 남편이 오고 아버지가 오고 문 앞에 사람이 모인다. 왕궁에서 내려온 소환이 아니라 그녀의 집에서 나간 전갈이고, 길은 그 집의 문턱에서 끊긴다. 전갈은 그 집에서 나가고, 고발은 그 집에서 열린다.문은 아직 닫혀 있고, 마당에는 발자국만 쌓인다. 고발이 시작되기 전, 불려 온 사람들은 아직 그 입을 듣지 못했고, 닫힌 문과 서로의 얼굴만 앞에 둔다. 누가 먼저 말을 꺼내는지, 그 말을 누가 왕에게 가져가는지는 아직 없다. 남편과 아버..
쿠레스 마을로 로마 사절이 들어왔다. 사비니 쪽 작은 고을 어귀에, 빈 왕위를 들고 선 사람들이다. 왕관이 번쩍인 자리가 아니라, 앉아 달라는 청이 먼저 도착했다. 누마는 그 청을 받지 않았다. 고을 앞에서 왕위가 한 번 멈춘 장면이다.그런데 그 고을에서 사절을 맞던 사람이 글로 남긴 적은 없다. 우리가 읽는 이 거절은, 훨씬 뒤에 다시 적힌 신화다.피로 닫힌 자리, 누가 앉을까?로마의 자리는 이미 비어 있었다. 형제의 선 위에서 건국의 권리가 피로 닫힌 뒤, 그 자리에 앉을 사람은 정해져 있지 않았다. 아들을 통해 이어진다는 법은 이 전승 안에 없고, 로물루스 다음이 당연히 누마인 이야기도 없다. 피가 끊긴 자리가 아니라, 처음부터 피가 답을 주지 못한 자리다. 피로 닫힌 빈 자리의 문제는, 피를 이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