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비타민

경기도 가볼만한 곳, 정조 사도세자 융건릉 숲길 산책과 역사 본문

잠깐여행

경기도 가볼만한 곳, 정조 사도세자 융건릉 숲길 산책과 역사

violet520 2020. 5. 24. 14:21

화성 융건릉은 주변이 그리 발전한 곳은 아니지만, 융건릉에 도착하면 바로 맞은 편에 작지 않은 규모의 무료 주차장과 여러 맛집들이 있어서 하루 정도 둘러보기 딱 적당한 여행지이다. 초,중학생 아이들이 있다면, 아이들과 함께 영조 - 사도 - 정조로 이어지는 역사 공부를 하기에도 괜찮은 곳이라고 생각한다.

융건릉 입구

 

융건릉

22대 임금 정조의 아버지 사도세자와 혜경궁 홍씨의 융릉, 정조대왕과 효의황후의 건릉이 모셔져 있는 곳.

주말을 맞아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어 있는 융건릉을 다녀왔다. 사도세자와 혜경궁 홍씨가 합장되어 계신 융릉과 정조대왕과 효의황후가 합장되어 있는 건릉을 합쳐 융건릉이라 부른다. 

 

정조대왕이 억울하게 죽어간 아버지 사도세자의 영혼이 구천을 맴도는 것 같아 괴로워 하던시절 보경스님으로부터 '부모은중경' 설법을 듣고 감명받아 아버지의 넋을 위로하기 위해 절을 세울 것을 결심하고 양주에 있던 부친의 묘를 현재의 위치로 옮기고 현륭원(정조 13년 1789년 10월)이라 칭했고, 당시 보경스님을 팔도도화주로 삼아 절을 지어 능을 수호하게 하고 명복을 빌었는데 그 절이 바로 근처의 용주사이다. 팔도도화주란 조선시대에 팔도(함경도, 평안도, 황해도, 강원도, 경기도, 충청도, 전라도, 경상도) 승려들에게 기부를 받아들이는 직책이다.

 

현륭원이었던 이름이 지금은 어떻게 능이 되었을까?

 

조선시대(1392~1910) 왕실과 관련되는 무덤은 ‘능(陵)’과 ‘원(園)’으로 구분되는데, 왕릉으로 불리는 능(陵)은 ‘왕과 왕비, 추존된 왕과 왕비의 무덤’을 말하며, 원(園)은 ‘왕세자와 왕세자비, 왕의 사친(私親)의 무덤’을 말한다.

 

사도세자의 최초의 묘는 현 동대문구 배봉산 아래 수은묘(垂恩墓)라는 명칭으로 존재했었다. 이 후 정조가 1776년 왕위에 오르면서 장헌세자로 시호를 올리며 영우원(永祐園)으로 격상 되었다.

 

영화 사도의 대사 중에 영조역을 맡은 송강호의 말미의 대사 중에 손자 정조에게 이런 말을 한다.

 

"

내가 니 아비의 기록을 지워주는 것은 너와 이 나라를 위함이다.

누구든 니 아비를 왕으로 추승하겠다는 자는 이 나라 종사의 역적이다.

이것이 너와 나의 의리다.

오늘부터 니 아비의 이름은 입에 담지도 마라.

애통은 애통이고 의리는 의리다.

"

 

물론 워딩이 위와 같진 않았겠지만 영조의 입장에서는 왕이 된 손자를 걱정하며 비슷한 이야기를 해주었을것이다. 하지만, 아버지에 대한 효심이 깊었던 정조는 아버지를 장헌세자로 시호를 올리고야 만다. 그렇게 서울에 있던 묘를 정조 13년(1789년)에 현재의 위치로 옮기면서 현륭원(정조 13년 1789년 10월)으로 다시 한번 묘가 격상되고, 훗 날 조선의 막바지에 다다라 고종 시절 대원군과 자신의 관계에서 사도세자에 대한 연민을 느꼈기 때문일까? 고종이 장헌세자를 고종 36년 국왕(장종)을 거쳐 황제(장조)로 추존하면서 이름이 융릉으로 바뀌었다. 

 

생의 시절에 그리 기구한 일생을 보낸 사도세자는 본인의 묘가 수은묘 -> 영우원 -> 현륭원 -> 융릉 으로 격상되면서 억울함에 대한 보상이 되었을까? 사도세자는 모르겠지만, 아버지를 향한 정조대왕의 마음은 현륭원을 만들며 아비의 억울함에 대한 보상이 많이 되었겠지...

 

사도의 부인 혜경궁홍씨(헌경의황후)는 1815년 순조15년에 세상을 떠나고 현륭원에 합장이 되었다고 한다.

 

현륭원이 화성으로 이전되면서 해당 지역에 살던 백성들의 이주가 시작되었는데 이 또한 신도시 정책의 시작이 된다. 별 기반시설이 없던 곳에 신읍이 생겨나면서 백성들의 수가 증가하고 큰 도시로 성장했다고 한다. 

 

그리고 정조대왕과 효의황후가 모셔진 건릉. 건릉은 효심이 깊은 정조대왕이 아버지 곁에 묻히기를 원하여 부자를 한 구역에 모시게 되었고 그렇게 융건릉이라는 이름으로 후세에 내려오게 되었다. 정조는 해마다 아버지의 능을 참배하기 위해 화성을 방문했다. 이것이 바로 수원 화성에서 매년 열리고 있는 ‘정조의 화성 능 행차’다. 백성을 위해서 수 많은 업적을 남긴 정조대왕의 이야기를 하자면 또 글이 너무 길어지기에 나중에 정조대왕의 개혁과 민본주의에 대해서도 한번 공부해서 적어보려 한다. (이 글과는 관계없는 이야기지만, 수원에 대유평 지구라는 곳이 있는데 이곳이 바로 정조가 조선의 농업을 전면적으로 개혁하고자 만든 대유평(大有坪)이다.)

 

건릉 / 융릉

융릉과 건릉은 여러 둘레길로 연결되어있다. 천천히 입구를 기준으로 천천히 둘레길을 걸어 두 능을 오가는데 2시간 정도의 시간이 걸린다. 중간중간 작은 넓은 들판도 있고, 걷는 재미가 있다. 

장조와 정조 가계도

입구에는 소규모의 융릉과 건릉 역사문학관이 있다. 정말 자그마한 규모로 존재하지만 꼭 들러서 내용을 훑어보면 도움이 된다. 조선 왕릉 분포도도 존재해서 다음에는 어느 왕릉을 가볼까 미리 고민해 볼 수 있다 

조선왕릉분포도

융릉으로 향하는 길

융릉 주변은 소나무 숲이다. 정말 공기가 맑다. 코로나 때문에 마스크를 쓸 수 밖에 없지만, 무려 KF94 마스크라 마스크를 쓴 상태로는 그 맑은 공기를 느낄수가 없다. 코까지 마스크를 내리고 맑은 공기를 정말 한~~~~껏 들이켰다. 숨만 쉬어도 모든게 힐링되는 느낌. 융릉 주변은 소나무 숲 건릉 주변은 참나무숲으로 가득한데 이 역시 어떤 이유가 있을 듯 한데 이유를 찾진 못했다 .

 

융릉 정자각

융릉에 도착하면 드 넓다. 주변의 자연에서 뭔가 보호받는 느낌을 받는다. 풍수지리가 이런곳에 쓰이는것이구나 싶다. 제향을 드리러 온 정조대왕이 매년 걸었을 어로를 따라 묘에 더 가까이 다가가 본다. 어로의 끝엔 정자각이 있는데 돌아가신 왕에게 제사를 지내는 곳이다.

광무 4년 1900년에 세워진 비각
정조 때 세운 비각

융릉에는 2개의 비각이 있다. 하나는 현륭원으로 격상했을 때 만들었던 비각, 하나는 광무 4년에 만들어진 비각 이렇게 2개의 비각이 존재한다. 비각들에는 총탄의 흔적들이 있다. 어떤 전쟁에서 였을까? 6.25 였을까?

 

건릉

둘레길을 한참 걸어가면 정조대왕과 효의황후가 합장되어 있는 건릉이 나온다. 

무인석 무인석

두 릉의 크기는 비슷한데 융릉을 지키는 문인석과 무인석이 훨씬 크다고 한다. 아마도 효심이 지극한 정조대왕이 죽기전에 내린 유언이었을까? 아니면 후세들의 판단이었을까? 개인적으로는 정조대왕의 효심이려니 한다.

 

무슨 사진인지 알아차리시는 분?

융건릉을 모두 답사하고 집으로 가려는 찰나 어처구니에서 정자각 바위틈 사이로 왔다갔다 하는 새 한쌍을 발견했다. 신기하게 쳐다보다 보니 정자각에서 지저귐 소리가.... 정자각 바위틈을 들여다보니 이름 모를 새끼 새들이 먹이를 달라고 우는 소리였다. 태어나서 처음보는 광경. 부모 새가 번갈아가며 바위틈 사이의 새끼 새들에게 먹이를 물어다 주고 있었다. 우리 가족이 너무 신가하게 들여다보는 사이 어미 새들은 어처구니 위에서 우리를 예의주시하며 경계를 하고 있길래 얼른 자리를 피해주었다. 융건릉에서 이런 광경을 목격하니 또 새로운 기분이 묘하다.

 

화성 융릉 개비자나무 - 천연기념물 504호
수국백당나무

융건릉을 둘러보가 나오는길에 입구에 들어갈 때는 인지하지 못했던 재실을 들렀다. 재실은 왕릉 관리자가 머물면서 왕릉 제사에 필요한 제사 준비물을 준비하는 곳이다. 조선왕릉은 들어가면 재실이 먼저 나오는데 어쩌다 보니 이번엔 가장 마지막에 들렀다. 현재 존재하는건 융릉의 재실로 건릉의 재실은 사라졌다고 한다. 남아있는 융릉 재실도 복원물로서 원형은 아니다. 융릉의 재실에 들어가면 천연기념물 504호 융릉 개비자나무가 있다. 비자나무랑 닮았다고 하는데 비자나무도 본 적이 없어서 아마 내 기억에는 비자가 개비자나무를 닮았겠거니 하겠지... 수국백당나무도 아름답게 피어있고.. 

 

유네스코 문화유산으로 지정되어 있는 조선왕릉 중 융건릉 가볍게 선책삼아 다녀오기 좋은 곳이다. 몸과 마음이 정말 어지럽고 복잡할 때 2시간여 산책을 하다보면, 드 높은 소나무 참나무의 푸르름과 볕이 너무도 잘드는 넓은 잔디밭에 서 있기만 해도 고민거리들에 대한 해답이 나올법한 그런 경치가 있다. 하지만 그 곳에 묻혀있는 역사를 함께 알아가며 느끼면 더 애틋하고 뿌듯한 곳이기도 하다. 아이들과 함께 조선왕릉 투어를 해보는건 참 좋은 경험이 되지 않을까 한다.

 

화성 융건릉 한 번쯤 꼭 가볼만 한 곳!


Comments